설교원고 1247

부활의 첫 열매 (고린도전서 15:20-26)

부활의 첫 열매 (고린도전서 15:20-26)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의식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식의 강 가운데에는 “양지와 음지”가 있는데, “의식의 음지”는,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나타나는 그림자입니다. 따라서 “의식의 음지”가 크면 클수록, 불안의 요소와 공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셨다.”는 메시지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어두운 의식의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는 놀라운 혁명이 되었고, 더욱이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죽음은 우리의 종말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이 부..

설교원고 2024.02.27

누구와 함께 걸어 갈 것인가?(6) (히브리서 13:5)

누구와 함께 걸어 갈 것인가?(6) (히브리서 13:5) 우리가 걸어가야 할 신앙의 길이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이 세상의 밤이 아무리 깊어도 우리는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비록 비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우리는 그 푯대를 향하여 걸어 갈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가 있습니다. 미당 서정주씨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 보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

설교원고 2024.02.25

누구와 같이 걸어 갈 것인가?(5) (창세기 5:21-24)

누구와 같이 걸어 갈 것인가?(5) (창세기 5:21-24) 저는 오늘 기가 막힌 사건을 하나를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아담이 범죄 한 이후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죽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이 법칙을 깨뜨릴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아담이 범죄 한 이후의 하나님 앞에서 창조된 인간은 누구나 다 죽게 되어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죽음을 당하지 아니한 사람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데려가시므로 그가 이 세상에서 홀연히 없어진 사람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도저히 우리가 가진 지식으로나 우리가 가진 이성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이성적인 책이 아니고, 과학적..

설교원고 2024.02.22

누구와 함께 걸어 갈 것인가?(4) (창세기 39:1-6)

누구와 함께 걸어 갈 것인가?(4) (창세기 39:1-6)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이 사람은 요셉입니다. 요셉 그는 어려서부터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는 꿈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기를 죽여 놓았기 때문입니다. “너희들은 나를 위하여 절하였고 나는 그 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심지어는 “부모님까지도 자신에게 절을 하였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는 형제들로부터 왕따가 되었고, 늘 항상 혼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요셉을 왕따 시키지 않고 늘 그와 함께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바로 그에게 꿈을 주었고, 용기를 주었고, 내일의 소망을 주었던 하나님이셨습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요셉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셨는지, 그가 형들에 의하여 애굽에 종을 팔려왔지만, 그는 그 주인으로..

설교원고 2024.02.19

누구와 함께 걸어갈 것인가?(3) (창세기 13:14-18)

누구와 함께 걸어갈 것인가?(3) (창세기 13:14-18) 오늘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아브라함은 어떤 성격의 사람 같습니까? 아브라함에 관한 여러 가지 성경적인 자료를 종합해 보면 “그는 성격이 사람 믿기를 잘하였을 같고, 마음이 넉넉하여 누가 어렵다고 하면 내 집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퍼주기를 좋아하고, 대인 관계에서는 더러 몰라서 속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알면서도 속아주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혹시 여러분은 “아브라함이 왜 이렇게 성격이 좋은가?”생각해 보셨습니까? 성격이라는 것은, 환경에 영향을 참 많이 받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의 성격이 이렇게 넉넉하고 풍성한 것처럼 “하나님께 선택이 되었고, 예수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하..

설교원고 2024.02.15

누구와 함께 걸어갈 것인가?(2) (마태복음 14:22-33)

누구와 함께 걸어갈 것인가?(2) (마태복음 14:22-33) 군대생활을 하신 남자들은 “봉 체조”라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전봇대만한 굵은 나무를 8-10명이 잡고서 함께 아래위로 올렸다 내렸다가 하는 것인데, 체조라고 하지만 사실은 기합입니다. 이런 기합을 받을 때, 가장 유리한 사람은 키가 작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키가 작다보니 팔도 짧아서 그냥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키가 비슷한 사람들을 붙여주지, 키가 작은 사람은 한 팀에 끼워주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키기 비슷한 사람이 아니면, 키가 작은 사람이 써야할 힘까지 키가 큰 사람들이 모두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믿음의 키가 똑같은 사람들끼리 있으니 문제가 생겨서 그것을 해결하려..

설교원고 2024.02.13

누구와 함께 걸어갈 것인가?(1) (누가복음 24:13-35)

누구와 함께 걸어갈 것인가?(1) (누가복음 24:13-35)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본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뿔뿔이 다 흩어졌습니다. 모두 자기들의 고향으로,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다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고 따르던 예수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십자가에서 죽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의 한 맺힌 소원을 풀어 줄 위대한 혁명가로 알고 믿고 따랐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그들은 다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람은 글로바라는 제자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또 한사람의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들이 따르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허무하게 죽자 실망을 한 채..

설교원고 2024.02.04

나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 (갈라디아서 6:14)

나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 (갈라디아서 6:14) 지구촌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자기의 있는 것을 자랑합니다. 낮의 태양은 그 강한 빛을 자랑하고, 밤에 달은 달빛을 자랑하고, 각종 새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자랑합니다. 이렇게 모든 피조물들은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며 자랑합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를 마무리하기 전에, 바울은 “나는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십자가를 통하여 발견하게 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오늘 고난주일을 맞이하여 “주님, 내가 무엇을 자랑해야 될까요?”라고 스스로 물어야합니다. 1. 우리 모든 성도들은 십자가만 자랑해야 합니다. 14절에서 바울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

설교원고 2024.02.02

듣는 귀의 은혜를 받읍시다 (마가복음 4:1-9)

듣는 귀의 은혜를 받읍시다. (마가복음 4:1-9) 위대한 교회 역사가인 “필립 샤프”는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확실하게 고운 가루를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매우 인상적인 표현입니다. 역사학자로서 필립 샤프는 “하나님 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맷돌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우리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맷돌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육체의 귀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귀가 있습니다. 들을 귀를 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의사소통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영혼과 믿음의 귀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거듭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는 하..

설교원고 2024.01.31

내일을 위하여 심어야 합니다. (갈라디아 6:6-10)

내일을 위하여 심어야 합니다. (갈라디아 6:6-10) 오늘 본문은 “우리의 삶을 경영하는 원리가 무엇인가?”를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그것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거둘 것이 없는 사람은, 여러 환경과 일들을 원망하기도 하고, 사회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고, 자신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파종과 추수의 법칙입니다. 만약 이 법칙을 부인한다면, 그 사람은 두 가지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첫째, 자신을 스스로 속이게 됩니다. 성경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말합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에서 발행되는 6개 일간지의 광고에 무속과 점술을 안내하는 광고나 “오늘의 ..

설교원고 2024.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