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1294

전도사역의 핵심 비전 (사도행전 19:8-10)

전도사역의 핵심 비전 (사도행전 19:8-10) 사도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의 장도에 오르게 됩니다. 제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에서 불과 한 달 남짓 쉼의 시간을 가진 후,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바울은 다시 전도 여행길에 오른 것입니다.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가장 핵심적인 선교전략지가 고린도였다면, 제3차 전도여행의 핵심적인 선교전략지는 에베소였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약 3년(행20:31)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 도시의 복음화에 전력투구를 다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 도시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복음인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전도여행 시간을, 이 도시에 투자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이 전력투구한 에베소 비전사역의 핵심과 전략, 그리고 그 결과를 살..

설교원고 2024.03.13

당신의 부모는 안녕하십니까? (에베소서 6:1-4)

당신의 부모는 안녕하십니까? (에베소서 6:1-4) 제가 지금 여기 한 인간으로 서있는 것은,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지만, 전적으로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아침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는 동시에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 사랑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양주동씨가 지은 “어머니 마음”노래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①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②어려서 안고 엎고 얼어주시고 자라선 문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

설교원고 2024.03.11

어떻게 자녀를 양육하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2:40)

어떻게 자녀를 양육하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2:40)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오늘은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여러분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약성경 4복음서 가운데 누가복음에만 우리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아주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41절을 읽겠습니다.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떤 가정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라셨는지 몇 가지 살펴 볼 수 있습니다. ①예수님의 가정은 부모가 함께 자녀교육에 힘쓰는 가정이었습니다. 여기 “부모가”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은 한마음으로 자녀교육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녀교육은 부모가 함께 손을 잡아야 합니다. 부모가 함께 뜻을..

설교원고 2024.03.09

은혜의 힘과 능력 (고린도후서 6:1-10)

은혜의 힘과 능력 (고린도후서 6:1-10)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지난주 총선결과를 보고, 정부와 정치계는 물론, 국민들도 놀라움과 더불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국민의 힘은 위대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 다른 차원의 제3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는 자들에게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힘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그 은혜를 망각해버렸습니다. 1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의 제목도 있었지만, 너무 슬펐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는 다른 교회보다 신령한 은사와 재정, 그리고 지역적인..

설교원고 2024.03.07

오직 예수 외에는 (마태복음 17:1-8)

오직 예수 외에는 (마태복음 17:1-8)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면 사회의 골치덩이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 요인의 첫째는 진실성의 상실이요, 둘째는 신뢰의 상실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건강하지 못하여 힘이 없으면, 사회를 이끌지 못하고 세상의 가치관에 끌려다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는 건강한 교회의 표지에 대하여,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요, 둘째는,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선포하는 교회요, 셋째는, 건전한 기독교 교리 체계를 가진 교회요, 넷째는, 개인적인 성결한 삶을 강조하는 교회요, 다섯째는, 영적지도자의 권위가 올바르게 행사되는 교회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17장의 본문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1...

설교원고 2024.03.06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 (요한복음 5:1-15)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 (요한복음 5:1-15)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자력으로는 치유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기적을 통해 고침받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최악의 난치의 병으로 고생하던 38년 동안 질병을 앓고 있던 한 병자를 고치심으로, 동일한 기다림을 안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시간을 초월하는 주님의 능력과 기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능력에는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이 질병을 앓고 있었든지,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이 문제 가운데 있었든지, 얼마나 오랫동안 절망가운데 빠져 있었든지, 얼마나 오랫동안 불신가운데 있었든지, 그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기적의 사건을 통해서 여러분과..

설교원고 2024.03.03

부활 그 이후 (요한복음 20:19-23)

부활 그 이후 (요한복음 20:19-23) 우리가 교회절기를 보낼 때에 유의해야 할 점은 “절기가 일과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우리가 부활주일을 통해 부활의 주님을 기념했다면, 이제는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신앙의 완성은 부활 그 자체에만 있지 않고, 부활은 부활하신 주님께 우리 믿음의 초점과 삶의 무게중심을 두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21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부활하신 주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오셨고, 그들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다시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셨습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죽음의 권..

설교원고 2024.03.01

부활의 첫 열매 (고린도전서 15:20-26)

부활의 첫 열매 (고린도전서 15:20-26)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의식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식의 강 가운데에는 “양지와 음지”가 있는데, “의식의 음지”는,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나타나는 그림자입니다. 따라서 “의식의 음지”가 크면 클수록, 불안의 요소와 공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셨다.”는 메시지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어두운 의식의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는 놀라운 혁명이 되었고, 더욱이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죽음은 우리의 종말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이 부..

설교원고 2024.02.27

누구와 함께 걸어 갈 것인가?(6) (히브리서 13:5)

누구와 함께 걸어 갈 것인가?(6) (히브리서 13:5) 우리가 걸어가야 할 신앙의 길이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이 세상의 밤이 아무리 깊어도 우리는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비록 비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우리는 그 푯대를 향하여 걸어 갈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가 있습니다. 미당 서정주씨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 보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

설교원고 2024.02.25

누구와 같이 걸어 갈 것인가?(5) (창세기 5:21-24)

누구와 같이 걸어 갈 것인가?(5) (창세기 5:21-24) 저는 오늘 기가 막힌 사건을 하나를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아담이 범죄 한 이후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죽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이 법칙을 깨뜨릴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아담이 범죄 한 이후의 하나님 앞에서 창조된 인간은 누구나 다 죽게 되어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죽음을 당하지 아니한 사람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데려가시므로 그가 이 세상에서 홀연히 없어진 사람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도저히 우리가 가진 지식으로나 우리가 가진 이성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이성적인 책이 아니고, 과학적..

설교원고 2024.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