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35)

Johnangel 2022. 9. 25. 22:27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35)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로 인한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세 가지 일이 있습니다. 


⓵하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너희에게 본을 보인 것처럼 나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⓶또 하나는, 최후의 만찬을 베푸시며 “성찬예식”을 행하신 것이며, 

⓷다른 하나는, 마지막으로 “고별설교”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말씀이 없지만, 특별히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남기신 마지막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도요한은, 요한복음 13장에서 21장까지, 예수님의 마지막 고별설교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사랑하라.”는, 말씀이 쉰여섯 번나오는데, 그 중에 마흔 네 번이,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에 쓰여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제자들에게 가장 하고 싶어 하셨던 말씀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34-35절을 읽겠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유언으로 남기신 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특별히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1.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일4:7-8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했고, 요일서4:16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늘 사랑하면서 살면,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사람이며,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2.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해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마치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저주받은 우리를, 모든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해,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죄인의 누명을 쓰시고, 죽어 마땅한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신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3.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랑하는 삶을 사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를 쓰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에 순종하여, 거룩하게 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며, 하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알고, 기뻐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이를 괴로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를 위해,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겨주심을 기뻐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소원과, 계획을 가지고 삽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아낌없이 바치려고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독자였지만,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사도바울도 이 세상에서, 누릴 영광을 기꺼이 포기하고, 주님만을 위해 살다가 순교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다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4.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자기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요일서4:20-21절을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형제를 사랑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5.사랑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증거 해주는 표식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반드시 그 부모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종종 자녀들을 바라보며 “어쩌면 저렇게 지 애비를 꼭 닮았는지. 혹은 어쩌면 저렇게 지 애미를 꼭 닮았는지”라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자녀는, 부모의 외모뿐만 아니라, 특이한 버릇까지도 닮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찌 하나님을 닮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이신 하나님을 닮아,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하나님의 인격을 닮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요일서4:1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했고, 요13:35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는 스승을 본받고, 스승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표준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 가운데서, 살리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라고 했고, 8절을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고, 10절을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도,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서,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서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모습이 보여질 때, 세상 사람들도 예수님이 세운 고현교회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참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교회는, 본래 진리 안에서 사랑이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2:4-5절을 보면, 예수님으로부터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는,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예언의 말씀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는 사라지고, 그 대신 에베소교회는 무슬림 회당로 점령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사랑이 없는 교회가 더 이상 교회가 아닌 것처럼, 사랑이 없는 성도도, 더 이상 성도가 아닙니다. 
다만 교회에 다니는, 교인일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목사도, 더 이상 목사가 아닙니다. 삯군일 뿐입니다.
제가 목회하는 가운데서도 보면, 유독 미운 짓만 골라하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그 사람을 위해 특별 기도를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제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혹시 여러분 가운데, 미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해보세요.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반드시 큰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엡5:1-2절에 보면,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행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타락의 속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악독함과,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못된 성품이 남아 있어서, 예수님처럼 사랑하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에서 우리성도들이 항상 말씀가운데, 살도록 훈련시키고, 기도생활에 열심을 낼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힘만으로는,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스데반 집사를 보십시오!
그는 자신을 돌로 치는 수많은 원수들을 향하여, 탓하기는커녕 도리어, 행7:60절에 보면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집사는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숨이 넘어가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스데반집사는, 우리와 다른 특별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스데반집사도 저와 여러분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보통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죽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가정에도 문제가 많고, 사회에도, 직장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심지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교회에 나왔다가, 교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사람 사는 곳은, 어디라도 문제없는 곳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문제가 많을까요?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증오심과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따라서 어디를 가든 문제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자녀가운데 문제를 일으키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이 있으시다면, 무조건 잘못됐다고 야단치지는 마십시오. 
아이들의 투정이나 반항은, 나를 사랑해달라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에 대한 내 사랑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하시고, 더 따뜻하게 안아주시고, 사랑의 고백을 자주하며, 더 뜨겁게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 
바라기는 우리 주님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가시는, 주님의 참된 제자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