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고난주간 설교원고 - 나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 (갈라디아서 6:14)

Johnangel 2018. 3. 26. 19:58

고난주간 설교원고 - 나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 (갈라디아서 6:14)

 

                                               

지구촌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자기의 있는 것을 자랑합니다.

낮의 태양은 그 강한 빛을 자랑하고, 밤에 달은 달빛을 자랑하고, 각종 새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자랑합니다.

이렇게 모든 피조물들은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며 자랑합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를 마무리하기 전에, 바울은 “나는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십자가를 통하여 발견하게 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오늘 고난주일을 맞이하여 “주님, 내가 무엇을 자랑해야 될까요?”라고 스스로 물어야합니다.

 

 

1. 우리 모든 성도들은 십자가만 자랑해야 합니다.

 

14절에서 바울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오직 십자가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성도의 자랑은 십자가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성도들 중에는 십자가를 자랑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11-13절을 보면, 당시 갈라디아교회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유혹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 외에 뭔가 하나 더 이력이 있어야 되고, 경력이 있어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몸에 상처를 내는 할례를 받았고, 율법은 지키지 않으면서도 할례를 받은 그 상처만을 자랑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율법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할례가 더 소중합니까?

율법이 더 소중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롬7:9절에서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성도가 십자가를 자랑하지 아니하고, 성령에 따라 살지 아니하면, 율법에 매여 할례 받은 육체만을 자랑하게 되고, 세상에 헛된 것과 일시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겨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을 몸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사랑의 십자가이며, 우리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십자가인 것입니다.

 

갈2:20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그 사랑은 십자가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자랑하기보다 “그 십자가의 의미와 목적과 그 십자가의 은혜를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과연 무엇을 자랑하였습니까?

 

2.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은 나에 대하여, 나는 세상에 대하여 죽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나는 세상에 대하여, 세상은 나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지만, 결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에게만 속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에 끌려 다닐 필요가 없고, 내가 세상을 위하여 살 필요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었고, 세상이 나에게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은 관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서로 죽는 관계이기 때문에, 세상이 나에게 손을 벌릴 일도 없고, 또한 내가 세상에 대해서 손을 벌릴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예수 믿는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삶의 목적과 의미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의미는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세상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세상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예수님과 함께 죽은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도전에 대하여 더 이상 반응하지 아니하고, 부활하셔서 새 생명을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향해서만 반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십자가를 자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오직 십자가 복음만이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키고,

죽은 자를 살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값없이 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예외 없이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의 공자나, 석가모니나, 마호메트나 그 어느 누구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일이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철학이나, 어떤 가르침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지를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십자가를 통하여 거듭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눅9:23절을 읽겠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러분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이 십자가는 주님의 나를 향한 사랑, 사명, 직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너희는 빛이요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집안의 영적 가장이요, 집안의 영적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의 영혼을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날마다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그 십자가를 지고 사십니까?

 

서기 325년에 니케아에서 세계 기독교 총회가 있었습니다.

이 회의에 318명의 교회지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지도자들 가운데 306명이 장애자였습니다.

그들은 태어날 부터 장애자가 아니라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고, 매를 맞아 다리가 부러뜨림을 당하고, 눈이 뽑히고, 팔뚝과 손가락이 짤려서 장애자가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단지 열두 명만이 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마음에 생각하면, 거룩한 전율을 경험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주님의 몸이신 교회의 정체성과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서 몸을 던졌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의 직분자들은, 주님 사랑이 최우선인 사람, 교회를 최우선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직분자이냐? 얼마나 배웠느냐?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의 몸이신 교회를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담임목사이지만 대한민국 5만 교회 모두를 다 사랑합니다.

그러나 제가 특별히 어떤 교회를 더 사랑하겠습니까?

저는 “교회를 위해서 죽으면 죽고 살면 산다.”라는, 오직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자신의 인생을 드려서 주님을 사랑하는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따라서 부활의 새 생명을 가진 우리는 주님의 주재권을 온몸으로 고백하는 십자가의 흔적을 지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십자가는 저와 여러분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고난주간 우리 모두 특별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십자가의 그 의미와 사랑에 감격하며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라고 눈물로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