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하시다 (사도행전 8:14~16)

Johnangel 2022. 9. 8. 11:37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하시다 (사도행전 8:14~16)

 

 제가 지난주에 사도행전 8장은성경전체를 놓고 볼 때조금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연구하는 목사들이나신학자들 사이에서이 본문은 항상 섭씨 100도입니다.

지금도 논쟁과 토론이 끝나지 않고또 그에 대한 여러 견해들이 상충되어항상 뜨겁게 달궈져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본문으로 설교할 때는상당 부분 자신의 신학적 견해와 확신그리고 자기 자신이 체험한 모든 과정을 토대로나름의 주관적인 해석을 담아서 말하게 된다는사실을 이해해야합니다.

한마디로 교회마다목사마다해석상 차이가 있다는 점을감안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 입장에서도 “이 견해가 옳다.”고확신하는 방향으로 이 본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그 가운데 분명히 잘못된 해석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령세례 사건을 보면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그야말로 복음의 첫 꽃망울이 터지던 그때하나님의 영광이 첫 서광으로 환하게 비치던 그때는오늘날과 다르게 성령이 임하시는 역사가 계속 눈에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에서는조금 다른 인상을 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16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그렇습니다.

이제까지 세례를 받을 때 임했던사마리아에서는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성령이 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은 왜 이와 같은 예외적인 일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이 예외적인 사건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1. 예외적인 사건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 가운데보편적인 일이 어느 곳에서 예외가 되었을 때거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습니다.

이것이 신학적인 해석이요성경적인 해석입니다.

 

여기 사마리아에서의 예외적인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빌립을 통해 세례를 줄 때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하나님은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셨던 것을 눈여겨봅시다.

 

빌립에게 어떤 결함이 있어서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빌립은 성령의 역사와 무관한 사람이 아닙니다.

26절이하의 내용에 나오는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신하요내시 사건을 보면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수레를 타고 가며이사야서를 읽던 에디오피아 내시가 빌립을 통해예수를 믿고 그리스도를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물 있는 곳에 이르러빌립이 베푸는 세례를 받습니다.

 

38-39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세례를 주고 물에서 올라온 빌립을 누가 데리고 갔습니까?

주의 영이었습니다.

빌립은 주의 영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의 사람인 빌립이 세례를 베풀었을 때성령이 특별히 임하는 역사가 따르지 않았다면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빌립이 “물세례를 주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기록은 없지만분명히 물세례와 함께 성령세례가 내시에게 역사한 것이 사실이고그 결과 내시는 예수 믿은 큰 기쁨을 안고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에서는빌립의 세례에 성령이 임하신 어떤 외적인 증거가 보이지 않습니다.

세례와 성령 임재이 두 가지는 항상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에서는물세례만 있고성령 임재의 증거가 없습니다.

 

이 부분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완전한 해석은 할 수 없다.”고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묵상하며갖게 된 확신을 통해말씀을 해석해 보려합니다.

그러나 “이 확신 또한 변할 수 있다.”는것을 전제해야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본문은 어려운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2. 성령의 역사 없는 물세례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의도적으로 사마리아에서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떼어 놓으신 이유는앞으로 이 성경을 읽는 모든 교회에게물세례와 성령세례는 하나요동시적이라는 것을강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따로 구분될 수 없다.”는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요한 두 사도가 사마리아의 이 현상을 보고 “이것이 정상이 아니요예외적이라.”고받아들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세례와 성령세례가따로 구분되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하나님께서 이 교훈을 교회에 주시기 위해 사마리아에 예외적인 사건을 허락하셨다.”고생각합니다.

 

이것은 “마치 어머니가 일부러 음식과 소금을 따로 내놓고 간을 보라.”고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자녀들은 “이때 음식의 맛과 소금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초대교회 여러 사건 중에유독 이 부분에서만물세례와 성령세례가 따로 나뉜 것처럼 보이게 하신 이유는물세례를 받을 때성령이 임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을교훈하시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따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어떤 증거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얻으며중생의 사람이 되고교회의 한 몸이 되는 사람에게 성령이 세례와 함께 임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이 말씀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이미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3. 같은 복음같은 성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마리아의 성령사건을 의도하신 이유가또 하나있습니다.

사마리아는복음이 이방으로 전파되는 요충지였습니다.

사마리아는성령을 받고큰 권능을 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온 유대를 거처 땅 끝에 이르기 전에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습니다.

사마리아는 유대나라와 이방나라 사이를 연결하는문턱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에게는 구원이 없다.”고생각할 정도로그 지역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10장에 나오는 고넬료 사건에서 보듯이 유대인들은 “이방인은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향해 높은 벽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유대인의 생각과는 달리예루살렘에 주셨던 오순절 성령사건을 사마리아 신자들에게도 뚜렷하게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그것도 사도 중의 사도로 인정받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뚜렷하게 보여 줌으로써복음 앞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평등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 자나 사마리아 그리심산에서 예배하는 자나 하나님께 성령 받은 자의 예배는 동일하다.”는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혈통적으로는 유대인이 될 수 없지만 “예수의 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것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엘 선지자의 예언처럼 남종과 여종에게자녀에게늙은이에게젊은이에게 골고루 임하게 될 성령의 선물입니다.

 

2:28-29절을 읽겠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하나님은 예루살렘교회 “특별히 사도들에게 복음 앞에서는 모두 다 평등하다.”는 것을교훈하시기 위해이 사건을 일부러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런 오순절 체험은성경 몇 곳에서 다시 반복됩니다.

처음에는 예루살렘에서두 번째는 사마리아에서세 번째는 이방인 고넬료 집이 있는 가이사랴에서마지막으로 에베소가 있는 소아시아 지역입니다.

 

4. 성령체험 없어도 성경이 확증합니다.

 

오늘날에는 왜 세례 받을 때이런 성령의 역사눈에 보이는 어떤 증거들이 잘 안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성령이 세례와 함께 임하신다.”는 것을하나님이 눈으로 보여 주시는 것 외에는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눈으로 보고 어떤 체험을 통해야만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것을 믿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다음에는체험이 따르지 않아도 진리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함께 하시고성령 받는 역사가 내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성경은 여러 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완성된 성경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에게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보여 줄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귀에 들리는 증거가 없어도성경말씀을 통해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별한 섭리와 뜻이 있을 때에는오늘날에도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눈에 보이게 임하시는 역사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