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1294

벼랑 끝에서 만난 하나님 (고린도후서 1:8-11)

벼랑 끝에서 만난 하나님 (고린도후서 1:8-11) 우리 인간의 절망은 환경이나 상황자체보다도, 그 환경이나 상황을 넘어설 수 없는 마음의 두려움에서 시작됩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은 정말 삶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도 그럴 수 있을까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8절에서 바울 사도는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라고 묘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건인지는 정확하게 우리가 분명하게 알 길이 없지만 바울은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전도하다가 핍박을 받고 감옥에 투옥당하여 언제 사자의 밥이 될지 모르는 등의 그 어떤 상황..

설교원고 2023.04.14

지금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누가복음 15:11-24)

지금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누가복음 15:11-24)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행복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행복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얻지 못하고, 가정문제, 건강문제, 경제문제, 장래문제, 정신문제 등으로 끊임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순간적인 쾌락은 있어도 참된 행복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어떤 집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자기 몫의 재산을 미리 달라고 아버지와 담판을 하고, 떼를 써서 그 재산을 받아 먼 나라로 가출해 버렸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 둘째 아들의 가출심리를 “아버지의 간섭이 없는 자유를 찾아 먼 나라를 향해서 떠나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어쩌면 탕자의 화려한 외출이였고, 당당한 ..

설교원고 2023.04.14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신명기 33:29)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신명기 33:29) 오늘 영적인 면에서 이스라엘인 우리들에게 이 말씀이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모세 자신도 이들을 생각할 때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 애굽 사람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강대국의 사람들로서 교양을 갖추고 있었고,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살았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배운 것도 없었고, 교양미도 없었고, 세련되지도 못했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육신의 눈으로 겉모양만 본 것이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해서 애..

설교원고 2023.04.12

창조적인 소수자 (민수기 14:6-10)

창조적인 소수자 (민수기 14:6-10) 일반 교육학에서는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고 믿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절 근처에서 시장 근처로,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글방 근처로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의 사람은 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동물들은 환경에 적응하고 살지만, 우리 믿음이 사람들은 환경을 바꾸고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상황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모습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음의 눈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열 정탐꾼은 “그 땅을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땅이라”고 말했지..

설교원고 2023.04.11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입니다(이사야 43:18-21)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입니다(이사야 43:18-21) 광대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개인과 가정과 생업과 우리 고현교회와 우리나라 온누리에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신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기회요, 값진 선물입니다.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월을 낭비하는 것을 시간을 죽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제는 폐기된 수표요, 미래는 약속된 수표이며, 오늘은 반짝거리는 현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반짝 반짝 빛나는 그 현찰을 가지고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시겠습니까?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입니다. 꿈이 없는 인생은 삶이 고된 노동일뿐입니다. 그러나 꿈을 가진 사람은 오늘에서 내일을 보고 미래의 ..

설교원고 2023.04.10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 (누가복음 17:11-19)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 (누가복음 17:11-19)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기억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것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또 어떤 것은 “기억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시103:2절에 보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하셨고, 사43:18절에서는 우리가 새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의 혼란은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사는가 하면, 반대로 잊어야 할 것은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을 만나 치유를 체험한 열 명의 나병 환자들에 대한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설교원고 2023.04.09

주 안에서 하나 된 증거 (고린도전서 11:17~34)

주 안에서 하나 된 증거 (고린도전서 11:17~34)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은 “주님이 내 삶의 중심이 된다”는 것을 다시금 기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중심도 어느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다스리시고 인도하셔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고린도라는 화려한 상업도시를 배경으로 세워졌습니다. 또한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은사사용과 돈과 쾌락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흔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예배는 형식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들의 예배가 성도들의 영적성장에 전혀 유익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고린도교회를 책망합니다. 17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 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되지 못하고..

설교원고 2023.04.08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고린도전서 9:19-23)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고린도전서 9:19-23) 공산통치시대 러시아의 한 수용소에 보리스 콘펠드라는 이름을 가진 유대인 의사가 배치되어 왔습니다. 그의 임무는 아무리 심한 병에 걸린 환자라도 “건강함. 일할 수 있음”이라는 결제 도장을 찍어 노동장으로 보내야한다는 지령을 받고 있었고, 만일 이 지령을 어기면 그는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한 죄수의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한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총명해 보이는 한 젊은 죄수를 진단하다가 그가 장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됩니다. 초기 장암이라 치료의 희망이 있다고 판단한 이 의사는 수용소의 비밀수칙을 어기고 정성을 다해 치료하고 그에게 예수..

설교원고 2023.04.07

신앙의 명문가 (사도행전 10:1-8)

신앙의 명문가 (사도행전 10:1-8) 오늘 본문에 보면 로마제국의 군인 고넬료가 거주하던 곳이 이스라엘 땅의 해안도시 가이사랴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방문지는 가이사랴에서 남쪽으로 불과 50km 떨어진 해안도시 욥바로 되어 있습니다. 이 두 해안도시는 당시 로마로 오가는 모든 배들이 정박하는 항구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침내 로마와 온 세상으로 전파할 믿음의 증인과 선교사 가문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방인 전도의 도구로서 주님께서 이 고넬료를 준비하고 쓰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1. 가족 신앙의 영성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개인을 구원하는 영성에서 출발합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수용하는 것도,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는 것도, 개인적인 결단에 근거한다는..

설교원고 2023.04.06

우리가 언제쯤 전도해야 합니까? (갈라디아 2:8-10)

우리가 언제쯤 전도해야 합니까? (갈라디아 2:8-10) 문화를 초월하여 다른 문화권에 가서 전도하는 분들을 가르쳐 우리는 선교사라고 부르는데, 그 본래의 뜻은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선교사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교사와 정확하게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있는데 헬라어에서는 사도를 “아포스톨스”(apostolos)라고 부릅니다. 그 뜻이 바로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는 좁은 의미에서는 예수님의 12제자와 같은 분들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을 사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을 다시 세상으로 보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요17:18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

설교원고 2023.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