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1294

구하고 찾고 기다리는 기도 (마태복음 7:7~12)

구하고 찾고 기다리는 기도 (마태복음 7:7~12) 우리는 모두가 짧은 한 생을 살면서,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불확실한 많은 일들과 역경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오늘 주신 이 말씀만큼,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이,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 붙들고, 마음껏 털어놓고 싶은,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자주 발견하곤 합니다. 또 귀를 기울이는 분들이 있다 할지라도, 문제를 해결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많이 체험하게 됩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우리 모두가 오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조용히 묵상할 때에, 가슴이 시원해지는..

설교원고 2022.08.13

사울의 가슴에 스데반의 피가 번지다 (사도행전 7:55~58)

사울의 가슴에 스데반의 피가 번지다 (사도행전 7:55~58) “부활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순교자가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를 믿으라.”고, 권하는 것이, 표면적으로는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에서는, 큰 싸움인 것입니다. 사탄은, 그 소리를 죽어도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분을 믿지 않으면 멸망 받는다.”고, 전도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을 두고 사탄과 나 사이에, 근본적인 싸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요, 구주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분명히 내 생명을 내놓고, 증거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

설교원고 2022.08.10

복음의 능력 (로마서 1:16~17)

복음의 능력 (로마서 1:16~17)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에서 “저 분처럼 살고 싶다.”고, 나에게 큰 도전을 주신 분 가운데, 단연 탁월하신 분은,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이 살았던 모습을 보면, 그는 진정 “인생을 통달한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빌4:11-13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이렇게 살았기에,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서양문화와 발전은, 바울이 전한 복음 위에 세워진 세계입니다. 그렇다면 세계사의 대 변혁을 가져 온,..

설교원고 2022.08.09

네 입을 크게 열라 (시편 81:10~11)

네 입을 크게 열라 (시편 81:10~11)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내가 입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약속대로 은혜를 채워주십니다. 계3:20절에 보면, 인격자이신 “주님께서 내 마음 문에 오셔서 들어오시기를 원하실 때, 내가 문을 열어야 내 안에 들어와 임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내가 문을 열어야 들어오시는, 인격적이신 신사와 같은 분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마치 강도와 같아서, 내가 문을 열던지 아니 열던지, 마구 들어와 우리를 괴롭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가 입을 넓게 열면 필요한 대로 하나님이 채워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입을 열어 기도함으로서, 이 시간 하나님께서 주..

설교원고 2022.08.06

전도와 선교는 왜 은혜인가? (로마서 15:14-19)

전도와 선교는 왜 은혜인가? (로마서 15:14-19) 로마서의 본론은, 오늘 본문의 바로 앞 절인 15:13절에서 끝이 납니다. 그리고 15:14절부터 16장 마지막 절까지는, 바울이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 개인적으로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론이 끝나고, 바울의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자리라고 해서, 중요한 말씀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또한 그것이 사적이든 공적이든, 본론이든 결론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으로서 그 모든 것이 귀중한 진리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우리가 본문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발견한 진리는 한마디로 “은혜”였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발견한 “은혜”가..

설교원고 2022.07.31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데살로니가전서 3:11-13)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데살로니가전서 3:11-13) 데살로니가전서 1장에서 3장까지는,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한, 바울의 칭찬과 감사와 회고와 변증, 그리고 격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기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를 향하여 전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말씀을 전파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위하여, 어떤 기도를 하였습니까? 1.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한 전도자의 길이 열리기를 기도했습니다. 11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살전2:8절에 보면, 바울은 벌써부터 한두 번 데살로니가교회를 방문하기를 원했지만, 사탄의 방해로 그 길이 박혀버..

설교원고 2022.07.31

순교의 피가 흐르다 (사도행전 7:52-54)

순교의 피가 흐르다 (사도행전 7:52-54) 우리 가운데 예수 믿는 젊은이가 자신의 믿음 때문에, 돌에 맞아 죽는 장면을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 믿는다.”는, 죄목으로 나무에 묶여 화형당하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찬송을 부르지만, 한번도 짐승에게 찢겨 순교당하는 그런 장면을 목격한 일도 없고, 우리 자신이 그와 같은 위험에 처한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의 순교 이야기는, 사실 우리가 읽기에 대단히 부담스러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설교준비를 할 때, 저는 수일간 망설였습니다. 왜냐하면 “저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흉내라도 낼 수 있어야 설교할텐데, 잘 먹고, 잘 입고, 편..

설교원고 2022.07.29

내어드림의 영성 (출애굽기 2:1~10)

내어드림의 영성 (출애굽기 2:1~10) 오늘은 “내어드림의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길 원합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으로 살아가는 시기였습니다. 특별히 이때는 모세가 태어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의 노예로서 가장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애굽 바로왕의, 박해가 가장 악랄한 시기였을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은 어떻게 돌보십니까? 우리 같이 출애굽기1: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애굽사람들이 학대를 하면 할수록,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이상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번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왕은, 특..

설교원고 2022.07.24

오로지 기도에 힘쓰다 (사도행전 1:14)

오로지 기도에 힘쓰다 (사도행전 1:14)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간 제자들에게 특별교육을 시키시고, 이 땅에서 지상사역을 마치신후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작별한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흩어지기가 싫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신 마당에 사랑하는 형제자매들끼리 흩어져 버리면,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것 같이 불안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갑시다.”하는, 말도 없이 똑같은 방향으로 길을 걸었고 “들어갑시다.”하는, 말도 없이 늘 모이던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사람들이 무엇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계속해서 전심으로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처럼, 우리..

설교원고 2022.07.23

광야 교회의 완악한 회중 (사도행전 7:39~40)

광야 교회의 완악한 회중 (사도행전 7:39~40)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였지만, 광야교회의 회중은 “완악하고 강퍅한 자들”이었습니다. 여기 “완악하고 강퍅하다”라는 뜻은, “성질이 억세고 사납고 고집스럽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광야교회의 회중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일부러 마음 문을 닫았습니다. 신명기 15장에는 “완악하다.”는 뜻을 풀어 설명한 예가 나옵니다. 신15:7-9절을 읽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

설교원고 2022.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