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1294

늘 급한 일로 쫓기십니까? (골로새서 4:2)

늘 급한 일로 쫓기십니까? (골로새서 4:2) 여러분, 교회라는 건물 안에서 행하는 나의 삶과, 교회라는 건물 밖의 나의 삶이, 어떤 상관이 있습니까? 혹시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건물과 장소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석 같은 신앙고백 위에 사람들의 모임과 회중을 세우실 때, 그 어떤 것도 이들을 막을 수 없고, 죽음도 멈추게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세상과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속화되지 않아야 하고, 세상과는 다른 교회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 진정한 교회..

설교원고 2022.06.25

균형 있는 신앙생활 (마가복음 3:7-12)

균형 있는 신앙생활 (마가복음 3:7-12)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폭발적이어서, 유대나라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많은 군중들이, 그를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자기가 원하는 열두 명을 선택하여, 제자를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신,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4-15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선택하신, 이 열두 명의 제자들의 인품이나 배경을 보면,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사람들로서, 어떤 의미에서는 자격 미달 자들을 선택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균형을 갖는다...

설교원고 2022.06.25

영광의 하나님을 만나다 (사도행전 7:2~4)

영광의 하나님을 만나다 (사도행전 7:2~4) 스데반집사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조상 아브라함을 닮지 않았다.”고, 강하게 도전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아브라함과 무엇이 달랐기에, 스데반집사는 그렇게 말했을까요? 스데반집사는 “아브라함은 전적인 은혜를 받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으로서 당대 유대인과 달랐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은 율법 안에서 배운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대면했다.”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상식적으로 아는 하나님을 믿고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평생 동안 동행할 수 있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포다미..

설교원고 2022.06.20

교회를 세우는 영광스런 동역자 (사도행전 2:42)

교회를 세우는 영광스런 동역자 (사도행전 2:42)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건강한 교회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어서, 좋은 교회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의 최종 정착지가 되게 하는 것이, 교회의 비전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땀과, 눈물과, 희생과 기도가 제단에 스며들 때, 우리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공동체는,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가정공동체와 교회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교회공동체에 안에, 그렇게도 문제가 많은 것일까요? 그 이유는, 교회자..

설교원고 2022.06.18

“사실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사도행전 7:1-2)

“사실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사도행전 7:1-2) 회당에서 전도하던 스데반집사가,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했습니다. 스데반의 죄목은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한 죄”였습니다. 재판장인 대제사장은, 스데반집사에게 고소내용의, 사실 여부를 심문했습니다. 정말로 “예수가 율법이 잘못되었다고 가르쳤는지, 거룩한 성전을 헐어버려야 한다.”고, 선동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렇게 질문합니다. 1절을 읽겠습니다.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이 질문은 낯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도 똑같이 던져진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스데반이 똑같은 질문을 받고, 각각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비교해 보면, 우리는 또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

설교원고 2022.06.15

작은 구름 속에서 큰 비를 보라 (열왕기상 18:41~46)

작은 구름 속에서 큰 비를 보라 (열왕기상 18:41~46) 역사학자 찰스 베어드는, 자신이 일평생 인류의 역사를 연구하던 중에, 소중한 4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나는 인간들의 잔인한 파괴 속에서도 더 힘 있게 건설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다. 둘째, 하나님의 연자 맷돌은 비록 천천히 돌아가지만 정확하고 섬세하시다. 셋째, 꿀벌이 꽃의 꿀을 따면서도 수정을 시키는 신비를 보았다. 넷째, 나는 캄캄한 밤중에 하늘의 별이 더욱 빛나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의 삶은 무엇입니까? 어둠 속에서 빛을, 부정 속에서 긍정을, 작은 것들 속에서 큰 것을, 손바닥만한 구름 속에서 천지를 뒤덮는, 소낙비를 보고 사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험한 길을 갈 때 필요합니다. 밧줄은 높은 산을 오..

설교원고 2022.06.13

율법과 성전을 재해석하다 (사도행전 6:13~14)

율법과 성전을 재해석하다 (사도행전 6:13~14) 스데반집사는, 절대로 자기감정에 치우쳐 과격하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역사하셨고, 거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스데반집사가 복음을 증거 한 뒤 나타난 반응을 보면, 확실히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매수하여,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했다.”고, 증언하게 합니다. 거짓 증언의 내용은, 13절에 있는 대로 “성전(거룩한 곳)과 율법을 모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스데반집사의 죄목을 그렇게 정했습니다. “성전과 율법” 이것이 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문제가 되었을까요? 이 부분은 구약과 유대인들을..

설교원고 2022.06.09

하나님 가족으로서의 교회 (에베소서 3:1~13)

하나님 가족으로서의 교회 (에베소서 3:1~13) 영국교회에서 사람들을 대상으로, 종교의식에 관한 설문 조사를 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설문조사 항목 가운데, 한 질문이 “당신은 어떤 교회를 원하십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조사자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는 대답을 해서, 아주 당황했던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교회를 원하십니까? 마음속으로 대답해 보세요. 당신은 어떤 교회를 원하십니까?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빨간 벽돌교회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교인이나 비교인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에 대한 이해가, 성경의 이해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결코 빌딩이 아닙니다. 다시 ..

설교원고 2022.06.06

목숨 걸고 말하다 (사도행전 6:10-11)

목숨 걸고 말하다 (사도행전 6:10-11) 초대교회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스데반집사는 “예수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거침돌이 된다.”는,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입증한 전도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스데반집사는, 유대인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사도들보다 오히려 스데반집사가 탁월했습니다. 스데반집사는 막연히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라고, 전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약점을 들추어내며, 예수그리스도를 언급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가 부활하셨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스데반집사처럼, 유대인들이 안고 있는, 환부를 건드리는 작업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스데반집사는, 접근 방법부터 달랐습..

설교원고 2022.06.03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살린다 (디도서 2:11-14)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살린다 (디도서 2:11-14) 여러분, 사람의 가치는 무엇이 결정합니까? 사람의 가치는, 성적이나, 소유나, 직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치관”이란, 자신의 근본적인 가치를 결정짓는 안목입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부요해도, 가치관이 혼란하면, 그 사회는, 살만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치관을 갖지 못한다면, 그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와는 관계없이, 자기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결정짓고 제한합니다. 여러분의 궁극적인 가치는, 누가 결정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복음진리가 결정합니다. 세상의 제도나 견해가 우리의 궁극적인 가치를 결정짓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인간의 가치를 깨..

설교원고 2022.05.29